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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급속 성장과 장기적인 거액의 적자
아편전쟁 이후,자본주의의 열강들은 침략을 강화하였고,대외무역이급속하게 성장하게 하였다.
역년 세관 통계의 평균수치를 보면 총무역액은 1840년대는 550만 냥,
1850년대는 8200만냥 1860년대에는 1.3만 만냥,1870년대는 1.4억 냥,1880년대는 1.7억 냥,
그리고 1890년대에는 급속하게 2.7억 냥으로 성장하였다.
수입 평균액도 1840년대의 3000만냥에서1890년대의 1.4억 냥으로 증가하였다.
수출액도 1840년대의 2700만냥에서1890년대의 1.1억 냥으로 증가하였다.실제 수출액으로 계산하면 무역의급속 성장은 더욱 뚜렷하였다.
1843년에서 1895년까지,수입은 18400천냥에서 171697천 냥으로 증가하였고,
수출도 25460천 냥에서143293천 냥으로 증가하였으며,수입과 수출 무역은 각각 8배와 3배 이상 성장하였다.
이 시기 무역의 급속한 성장은 자본주의 열강들이 중국에 대해상품수출과 자원약탈을 강화한 결과이다.
하지만,이 시기의 수출입 무역의 성장은 불균형적이였다.
수입의 성장이 수출을 많이 초과하여 중국의대외무역에 엄중한 적자가 나타나게 하였다.
이는 아편전쟁 시기 중국대외무역의 중대한 변화이다.여기서 특히 지적할 것은 아편전쟁 이전,중국은 장기적으로 대외무역에서 줄곧 수출흑자였고,
영국,미국 등 나라는 할 수 없이 대량의 백은을 중국에 주입하여 무역의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특히 1860년 이후에는 구미 각 나라가 중국에 대한 침략을 강화함에 따라 중국의 무역 적자는 날로 심각해졌다.
1877년에 이르러 대외무역은 해마다 적자가 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적자 금액도 급속하게 증가하여 1865년에서 1880년의 16년간 순적자금액은 4572만 냥이였지만,
1881년에서 1894년의 14년간에는 순적자금액이 30895만 냥으로 증가하여 6배나 넘게 초과하였다.
반식민지성 대외무역의 심화
갑오전쟁 이후의 시기는 제국주의가 침략을 강화하고 중국의 반식민지반봉건 경제가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중요한 시기이고,
아편전쟁 이후 대외무역의 반식민지 성질이 심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20세기초,세계의 주요 자본주의 나라는 이미 제국주의 단계로 발전하였고,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하였으며 자본수출과 식민지 정책이 가속화되였다.
레닌이 지적한 바와 같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온통제국주의의 정책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조건에서 광서(光緖)20년,조선에서 동학당(東學黨)봉기가 일어나 청정부와 일본이 동시에 평정을 하러 갔는데,일본군은 조선을 점거하고
중국 해군을 습격하여 중일전쟁을빚어냈고,중국은 패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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